/ 유기견
생각이 많아지는 저녁이다.
낮잠자고 일어나니 멍해서 이디야에 머그컵 사러갈겸 밖에 나가 남자친구와 전화하며 걷고 있었는데 유기견 한마리를 만났다.
최근 유기견을 본 적이 드물어서 (유기견이 있어선 안되지만) 반가운 마음에 희고 작은 강아지를 따라갔다.
처음엔 경계하는 듯 나와 거리를 두고 이리저리 빙빙 배회했다.
귀가 쫑긋하고 참 귀엽게 생겨서 몇번 쓰다듬어주자 자꾸 따라와서 눈에 밟혔지만 ‘데려가지도 못하는데’하는 생각에 애써 정을 떼려 원래 목적지인 이디야에 들어갔다.
이디야에 들어서자 쪼끄만 녀석이 문밖에서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이 아쉬워 이디야에서 커피를 사고 다시 강아지를 찾아나섰다.
그 강아지는 차를 무서워 하지 않았다. 내가 지켜보는 내내 몇번이나 차에 치일 뻔했는지 모르겠다. 행여 사고라도 날까봐 걱정돼서 지켜본 것도 있고 쟤를 안전한 곳에다 데려다 줘야겠다 하는 생각에 언어교육원 쪽으로 유인하고 친구와 통화를 했다.
쓰다듬어주는데 귀 뒤쪽에 뼈처럼 딱딱한게 만져지나 싶었더니 동그란 혹(종기)이 나있었다. 이렇게 귀엽고 예쁜 외모를 가진 강아지를 버린 이유는 아마 이것 때문이리라 싶었다.
놀아주다가 날씨가 쌀쌀해서 가려고 자리를 떴는데 나와 친구를 졸졸 따라왔다. 결국 편의점에서 생수 한 병과 소시지를 사서 나왔다. 뭐라도 먹여보내고픈 내맘도 모르고 혼자서 학교로 쫄쫄 올라가길래 얼른 따라갔다.
인도 바로 옆에는 차가 많이 다녀서 걱정되었지만 중간에 멈춰서 손에 물을 받아 건네주었다. 목이 많이 말랐는지 허겁지겁 물을 받아마셨다. 급기갸 생수통에서 물이 나온다는걸 알아챘는지 아예 입을 생수입구에 들이박고 마셨다.
옆에 차도로 뛰어들까봐 위험하다 생각해서 과건물 쪽으로 유인했다. 가서 물도 더 주고 친구가 랩실에서 가져온 샌드위치도 쪼개어 주었다. 녀석이 경계를 풀었는지 내 무릎을 짚고 일어선다. 애교를 피우는건지 밥을 달라는건지.. 지금 생각해보면 밥 줬는데도 안먹었던걸 보니 자기 나름대로 내가 챙겨준데에 대한 보답으로 나에게 부리는 애교였나 보다.
이제는 정말 집에 갈 때이다. 나는 키울 여건이 되지 못한다. 나도 잘 알고있었다. 내 뒤에 붙어서 졸졸 따라오는 그애를 애써 외면한채 계속 집으로 걸어갔다. 자꾸 신경쓰였다. 뒤를 돌아보지못하니 옆의 유리너머로 따라오는지 재차 확인했는데 계속 따라오고 있다. ‘이대로 우리집앞까지 따라오면 어떡하지.. 데리고 갈순 없는데 ‘하고 걱정한다. 먼저 정을 준건 난데 걱정하는 것도 나였다. 카레모모앞까지 녀석이 따라왔다. 일부러 카레모모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고 뒤돌아보지 않고 루시까지갔다. 겨우 뒤를 돌아봤다. 다행인지.. 이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날이 추운데...
집에 들어가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디 간걸까. 괜히 내가 처음에 귀여워해주고 보살펴줘서 나를 주인으로 생각한걸까. 이미 버림 받아 상처받은 아인데 내가 똑같은 상처를 입힌건 아닐까.. 외면하고 걸어가는 나한테 상처받고 돌아간건 아닐까 하고 정말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그냥 녀석들을 귀여워하며 잠시 놀아주고 집에 돌아가면 그만이지만 길거리를 배회하는 길냥이와 유기견들에게는 그게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돌아갈 곳과 품 없이 이리저리 돌아다녀야하는 신세이다. 내가 뻗은 손이 그 아이들에겐 구원의 손길로 보일지도 모른다.
앞으로 괜히 이미 버림받는 아이들에게 똑같은 상처 주지 말고 모른 척 지나가는게 그 친구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밤이다.
너무 미안하고 미안하다. 상처 안받고 집을 찾아 조심히 돌아갔으면.. 미안해 강아지야